국내여행/충청남도

당진여행] 소설 상록수가 집필되었던 '필경사'

여주데이지 2012. 7. 24. 23:50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251-12에 위치한

당진의 문학유적지 필경사는 일제강점기 심훈선생이 문학창작활동을  위해서 1932년 한곡리로 내려와

이듬해인 1933년 '영원한 미소'를 쓰고 ,1934년 " 조선일보에 장편소설 '직녀성'이 연재되면서 

그 원고료를 모아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 이라고 합니다.

심훈선생은 1935년 이집에서 장편소설인 상록수를 52일만에 탈고 하였고,

동아일보 창설 15주년 문예작품 현상모집에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필경사에 들어서면

2001년 심훈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사철 푸른 상록수를 상징해 무쇠로 만든 조각품이 있습니다.

 

심훈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썼다.

본관은 청송. 본명은 대섭(大燮), 아명은 삼준·삼보. 호는 해풍(海風). 백랑(白浪)이라는 별호도 사용했다.

1901년 9월 아버지 상정(相珽)과 어머니 해평윤씨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큰형 우섭은 〈매일신보〉 기자를 거쳐 방송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작은형 명섭은 교회 목사였다. 1915년 서울교동보통학교를 나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며, 1917년 왕족인 이해영과 결혼했다.

1919년 3·1운동 때 투옥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이 사건으로 퇴학당했으며, 1920년부터 3년간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망명기간중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난징[南京]에서 활동하다 항저우[杭州]의 즈장[之江]대학에 입학했다.

1923년 귀국,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내세운 염군사(焰群社)의 연극부에 가담해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했다.

1924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소설 〈미인의 한〉 후반부를 번안했고, 부인 이해영과 이혼했다.

1925년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 역을 대역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으며, 그해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가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동아일보〉에 한국 최초의 영화소설인 〈탈춤〉을 연재했으며,

박헌영·임원근·허정숙 등과 함께 '철필구락부사건'(鐵筆俱樂部事件)으로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당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했으며, 6개월 후에 돌아와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해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1928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우리 민중은 어떠한 영화를 요구하는가〉 등의 평론으로 프로 작가들과 논쟁을 벌였다.

1930년 신여성 안정옥(安貞玉)과 재혼했다. 1931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로 내려가 창작생활에 힘을 쏟았다.

1933년 8월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잠시 근무했고,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되자

이때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으며, 1936년 〈상록수〉를 직접 각색·감독해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1936년 9월 36세에 장티프스에 걸려 사망하였다. (브리태니커)

 

 

원형에 가깝게 복원된 필경사는 일자형 초가지붕아래 목조기둥에 황토벽으로

농촌의 전형적인 작은 초가집입니다.

 

 

 

창문이 열려 있어 들여다 보니

 생활하시던 물건들이 잘 재현되어 있어 바로전까지도 이곳에 심훈선생께서 글을 쓰셨던것 같습니다.

 

 

 

1995년 건립된 '상록수 문화관'

심훈선생의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 입니다.

 

 

그날이 오면 검열본,

 

'먼동이 틀때' 원고본

 

'동방의 애인' 연재신문

심훈선생이 중국 유학시절 생활체험을 소재로 쓴 소설

1930년 10월29일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다가 12월10일 39호를 끝으로 게재정지를 당했다고 합니다.

 

 

 

 

 

 

 

 

 

 

심훈선생이 쓰시던 책상으로

상록수,직녀성,영원한미소등 다수의 작품을 이 책상에서 쓰셨다고 합니다.

 

 

 

 

  심훈선생은 소설가, 영화인, 그리고 시인으로 활동 하셨고

민족주의와 저항의식을 기본 정신으로 그의 작품은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훈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필경사' 여름방학에 아이들 손잡고

문학여행 떠나 보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