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라북도

3탑 3금당 동양최대의 사찰 익산 미륵사지

여주데이지 2012. 2. 2. 22:07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하는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30대 무왕(600~641년)에 의해 창건되었고, 17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의 창건에 대해 '삼국유사에 기록 되어 있는데

미륵사 인근에서 마를 캐며 홀어머니와 살던 서동이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후 왕이된 무왕(백제 30대왕)이

왕비와 함께 용화산(현제의 미륵산) 사자사에 있는 지명법사를 찾아 가던 중 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자

왕비가 무왕에게 절을 세우기를 청하고, 무왕이 이를 받아들여 연못을 메운후 법당과 탑,회랑을 세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는 미륵사지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미륵사지의 발굴은 1980년에서부터 1995년까지 15년간 실시되어 20,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막새기와, 유와기와의 등에 문자를 새긴 명문와, 토기류 그리고 자기류가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건물의 서까래 끝에 붙이는 녹유 연꽃무늬서까래 기와는 백제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상당수가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수는 많지 않지만 금속제품, 목제품, 벽화편, 토제편, 유리 및 옥제품, 석제품 등도 수습되어 종류 면에서 비교적 다양한 유물을

1997년 개관한 유물전시관에 전시 보전 하고 있습니다.

 

치미(백제)

사찰이나 궁궐의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올리는 장식 기와로서, 치마를 설치하는 목적은

용마루 끝을 깨끗하게 처리하기 위한 장식효과도 있지만

화재와 재앙을 피하기 위한 벽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

금동제사리외호와 금동제사리내호

 

금동향로(통일신라)

몸체에는 짐승다리모양의 다리4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 있고 몸체와 연결되는 부분에는 사자얼굴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미륵사지석탑

미륵사지에는 국보 11호인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높이 14.24Cm 석탑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 있으며 본래는 사각형태의 9층탑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미륵사지에는 국보 제11 인 미륵사지 석탑과 , 보믈 236호 당간지주, 문화재자료 제143호 석등하대석등이 남아 있습니다.

연못 뒤로 복원된 9층 미륵사지 석탑이 보이네요.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 236호)

당간지주란 사찰 앞에 설치했던 건축물로서 그 주변지역이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돌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철·금동·나무로도 만든다. 2개의 기둥을 60~100㎝ 간격으로 양쪽에 세우고 마주보는 안쪽 면에

 간(杆)을 설치하기 위한 간구(杆溝)나 간공(杆孔)을 두고 아래에는 간대(竿臺)나 기단부를 설치했다.

간구는 반드시 안쪽 상단에 있으며 그 아래의 간공은 구멍수가 일정하지 않다. 이러한 시원(始源) 형식은 시대에 따른 변화가 없으며,

 각면에 장식된 문양과 지주의 치석수법(治石手法)만이 시대적 툭징을 보일 뿐이다 .( 다음 백과)

 

미륵사지 경내에는 석탑의 남쪽에 동서로 약90m의 간격을 두고 규모나 형태 ,조성수법이 매우 비슷한 당간지주 2기가 세워져 있는데

장식이 적으며 단정한 형태로 보이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주정 되고 있다고 합니다.

 

복원된 동탑

 

동탑 내부

 

미륵사지 석등 하대석(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미륵사지 석등 하대석은 중원 목탑지와 동원 석탑지 북편에 2기가 위치하고 있고 이외에도 발굴조사에서는

원래의 위치를 이탈한 석등 부재들이 적지 않게 조사 되었다고 합니다.

미륵사지 석등 하대석은 우리나라 석등중 제작시기가 가장 빠른것으로, 석등의 시원 양식을 전해주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70~깊이 90Cm의 우물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마륵사지 금당은 초석반위에 1m 높이의 주춧돌을 올려 지음으로써 의도적으로

지면과 금당 바닥사이에 빈 공간을 만든 독특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은

2001년부터 일제강점기때 보강 되었던 시멘트를 제거하고 석탑을 해체복원하는 작업이 집행중으로

2009년 1월 14일, 1층 심주석 상면의 사리공에서 금제사리봉영기를 비롯한 사리장엄이 발견 됨으로써

 미륵사의 창건 사실의 진실성을 한층더 높여주게 되어다고 합니다.

석탑이 현존 높이는 14m이고 탑신의 1층 네면에는 문을 만들어 내부로 들어 갈 수 있고 사방이 통하게 하였으며

내부 중앙에는 목탑의 찰주와 같은 사방 99cm의 거대한 사각현 심주석을 세웠고,탑신 모서리 기둥돌의 배흘림 기법이나

얇고 넓은 옥개석의 네모서리를 살짝 치켜 올리는 기법등은 목조건물위 가구수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되는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한국석탑의 시원으로서,

백제인의 독창선과 실용성,7세기 당시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