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충청북도

우리나라 최고의 수리시설 제천 '의림지'

여주데이지 2011. 9. 22. 21:52

 

의림지는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였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義原縣) 또는 의천(義川)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로 저수지의 이름에 ‘의(義)’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의 음악가인 우륵이 만들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이야기로는 현감인 박의림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충청도관찰사인 정인지가 고쳐짓고, 다시 세조 3년(1457)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뒤 1910년부터 5년간에 걸쳐 3만여명이 참가하여 보수하였고,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져 이듬해에 보수하였다.

저수지의 둘레는 약 1.8㎞, 면적은 158,677㎡, 수심은 8∼13m이며, 주위에는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세워진 경호루가 있다. 제천의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의 수리시설로서,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유산)

 

제천10경중 제1경인 의림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중 하나였는데

현제는 수리시설보다  호수와 송림이 어우러저 아름다운 풍경에 제천시민들이 즐겨찾는 휴식처이고 데이트코스로 최고의 장소라고 합니다.

 

 

 

가족나들이 오신분들이 잔디에 둘러 앉아 즐거운 점식식사를 하는 모습도 보이고

선남선녀들의 데이트장면도 간간히 보입니다.

 

늦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데 세차게 흘러 내리는 인공폭포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 집니다. 

 

 

 

 

 

 

 

 

 

 

 

 

 

 

 

 

 

 

 

 

 

 

 

 

 

 

 

 

 

 

 

 

 

 

 

 

 의림지 주변은 수백 년 묵은 노송과 수양버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소나무 한그루 한그루 마다 관리번호가 적혀 있어요.  

1번째 부터 183번째 까지 인고의 세월을 느끼게 하는 노송들이

순조 7년(1807)에 세워진'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와 어우러져 의림지의 운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의림지가 생기기 전인 옛날 이곳에 부자집이 있었는데 하루는 이 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한동안 대꾸 없던 탐욕스럽고 심술 사나운 주인은 스님에게 거름 두엄에 가서 거름을 한 삽 퍼다가 주었다.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은 스님은 머리를 한 번 조아리고 발길을 돌렸다. 이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서

쌀을 한바가지 퍼다가 스님을 뒤쫓아가 줬고, 그것을 받은 스님은 며느리에게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것이니

빨리 산 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쌀독의 쌀을 축낸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한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뒷광에 가두고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며느리는 광속에서 안절부절못하는데,

요란한 번개, 천둥과 함께 잠겼던 광문이 덜컹열리면서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대로 얼른 광속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려가던 며느리는 두고 온 자식 생각에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해갔으며 집이 있던 자리는 땅 속으로 꺼져서 온통 물이 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집터가 바로 의림지가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