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북도

[경북/안동] 종이 봉황이 사뿐이 내려앉은 봉정사

여주데이지 2010. 1. 10. 02:36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위치한 봉정사는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인 672년에 의상이 창건 했다고 전해지지만

1972년 극락전 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에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대덕의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건축 박물관으로 알려진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

다포양식의 전형인 대웅전을 비롯하여,고금당, 화엄강당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매표소를 지나 소나무숲을 걸어가다 보면 왼쪽편 나무숲 사이로 작은 정자 하나가 보이는데 명옥대라고 한다.

명옥대는 원래 낙수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퇴계이황 선생께서 이곳에 수양차 오셨다가

이름이 너무 밋밋하다 하여 '물 떨어지는 소리가 옥 굴러가는 소리와 같다'고 명옥대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일주문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자, 사찰의 경계이다.

곧 일주문을 지나는 것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줄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한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항상 한마음 한뜻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봉정사는 불교사상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건립된 사찰이다.

화엄의 철학적 세계가 깨달음의 세계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화엄의 종주라고 할수 있는 의상대사는

수행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정토사상을 적절하게 조합시켜 사찰구도를 잡고 건물과 계단을 배치하였다.

3단계의 계단과 덕휘루를 통과하는 것은 부처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며 이는 수행자의 수행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만세루 (덕휘루; 유형문화재 제 325호)

만세루는 사찰의 중심공간인 본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서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곧 속세를 떠나 온갖 번뇌와 망상을

벗어 버리고 오로지 부처의 세계로 귀의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누문은 대부분 이층으로 건축되며 아래층은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며 윗층은 산사의 전망을 감상하거나

목어,운판,범종,법고 등으로 불리는 불교의 사물을 걸 수 있는 종루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대웅전

봉정사의 본전인 대웅전은 고려말 조선초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 된다.

극락전이 정면 3칸 측면4칸의 맞배 지붕의 형태라면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극락전이 지붕의 무게를 받쳐주는 공포를 기둥위에만 두는 주심포 방식을 사용 하였다면

대웅전은 기둥과 기둥을 이어 주는 평방이나 창방 위에도 공포를 두는 다포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고금당과 화엄강당은 주심포 방식의 변형인 익공 방식을 사용하여 건축하였다.

고려초의 건축 양식인 주심포 방식,고려말 조선초에 주로 사용한 다포양식, 조선중기에 발달하기 시작한

익공 양식의 건물을 한자리에서 볼수 있어  봉정사에 오면 한옥의 발달사를 한눈에 볼수있기 때문에

고건축 박물관이라 부른다.

 

 

 

화엄강당(보물 제440호)

극락전 영역과 대웅전 영역을 가르는듯이 앉아 있는 건물이 화엄강당이다.

지금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로 쓰이고 있지만

건믈의 명칭으로 보아서 한때 강당으로 쓰인듯 하다.

 

극락전 (국보제15호)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우리나라의 목조 건물의 고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고금당 (보물 제 440호)

화엄강당과 함께 극락전 양쪽에 서있는 건물 고금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집으로 1616년에 중수한 조선 초기 건물이다.

봉정사의 다른 건물들이 그렇듯이 규모가 작은 건물치고는 지붕이 크고 처마가 깊어 큰 갓을 쓴것 처럼 보인다.

 

 

3층석탑 

극락전의 정면에 있는 고려시대 중엽에 조성된 탑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중 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부분은 있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탑의 총 높이는 318cm이다.

2층 기단(基壇)을 쌓아 탑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기단에 비해 폭이 좁아진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 크기가 위로 갈수록 적당하게 줄어들면서도,

폭의 변화는 적다.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고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만 남아있다.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봉정사 우측에 있는 진여문

현판이 공민왕의 친필 이라고 한다.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이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을 만들어 나렸는데, 그 종이 봉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