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북도

[경북/안동] 한국정신문화의 중심지 도산서원

여주데이지 2010. 1. 9. 20:43

  

도산서원

(안동시 도산면 토게리 680,사적 제170호)

조선중기 대 학자인 한국 최초의 유학자 퇴계 이황이 도산서원을 짓고 유학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곳으로 선생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과 유림에서 선생의 높은 덕을 추모하기위해 건립한 선원이다.

선조8년 (1575) 당대 최고의 명필 이었던 한석봉의 친필로 편액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도산서당과 농운정사,광명실,전교당,상덕사,장판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에는 안동호가

뒤에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에워싸고 있어 멋과 서정을 듬뿍느낄수 있다.

 

도산서원 강건너에 있는 시사단.

시사단은 1792년 정조인금이 선생의 학덕을 기리며 ,영남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위해 과거를 보았던 장소이다.

임금의 어명으로 과거를 볼 장소를 정하기 위하여 당시 규장각 각신 이만수가 서원에 왔는데 장소가 너무나 협소하여

강건너 모래밭에서 과거를 보게 되었다.

그당시 응시자가 약 7000명이고 답안지를 낸 선비만도 3,600명이나 되었으며

왕이 직접 심사하여 11명을 시상한 역사작인 곳이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에서 지상 10m의 축대를 쌓아 그 위로 비각과 비를 옮겨지었다. 
 

 

도산서원 앞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당

퇴계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면서 제자을 가르치던 곳이다.

 

퇴계선생께서 거처하시던 방 '완락재'

 

마루'암서헌'

 

 농운정사

학생들이 숙식을 하며 공부를 하던 곳으로 요즘의 식숙사와 같은 기능을 한다.

일반민가에서 찾아 볼 수 없는' 工' 자형의 평면으로 건축 하였다.

이는 선생께서 제자들이 공부에 전념하라는 뜻에서 설계하였다.

 

광명실

전국서원에서 가장 책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약 5000여권의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선생의 친필이다.

동서 두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오른쪽 동광명실에는 역대왕의 내사서적과 퇴계선생이 자주 보시던 책이 있고

왼쪽에 있는 서광명실에는 퇴계선생이 돌아가신 뒤 근대에 발간된 책이 보관되어있다.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었다.

 

 

전교당(보물 제 210호)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퇴계선생이 돌아 가시고 4년뒤 조선 선조 7년 (1574)에

지방 유림과 선생의 제자들이 지은 건물이며 두칸의 방과 여섯칸의 마루로 되어 있다.

도산서원이라는 현판은 조선시대의 명필인 한석봉의 친필이며 임금이 내린 사액 현판이다.

전교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보면 좌.우측 두개로 되어 있는데 좌측의 스승이 다니는 계단이고 우측의 계단은 제자들이 사용한다.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핀본을 보관하던 장소이다.

건물을 자세히 보면 다른건물과 달리 앞쪽의 아래 부분과 위 부분으로 바람이 통할수 있게 만들어 놓았지만 뒷부분은

나무판으로 막혀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이것은 아침에는 산에서 습한 공기가 내려오고 저녁에는 건조한 공기가 올라가기 때분에 습기로 인해 썩는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어진 건물 형태이다.

선조어필,퇴계선생의 문집,언행록,병서,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 이 보관 되어 있다가

2003년 5월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겨 연구,보전 되고 있다.

 

 

 도산서원상덕사 부 정문

상덕사(퇴계선생을 모셔놓은 사당)를 둘러싼 담장도 보물로 지정 되었다.

지정 당시 흙담장 이었으나 도산서원정비때 현재의 돌담장으로 바꾸었다.

 

 

 고직사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기거하는 곳으로 서원관리와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주는 역활을 한다.

고직사 건물은 'ㄷ','ㅁ'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겨울에 햇볕이 잘 들게 하고 따뜻하게 바람을 막아주며

여름에는 절반이상 그늘져서 시원하기 때문이다.

 상고직사

 

 

 하고직사

 

 

 역락서재

퇴게선생이 도산서당에서 학문을 강론할때 정사성을 비롯한 뜻 있는 제자들이 힘을 합쳐 세웠다.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