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이틀은 집안일
마지막날은 유담과 창덕궁으로
카메라 둘러메고 편한 복장으로 집을 나섰다.
누가보면 사진 엄청 잘찍는줄 알겠다 하면서 ....
나올때부터 차 때문에 옥신각신 하다가
마음편하게 버스타기로 하고
종로2가에서 내려 인사동으로해서 창덕궁까지 걸어갔다.
명절연휴 마지막날 오전시간이라 그런지
서울 한복판이 한적하다.
길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고 아침이라 매연도 적은것 같고
조용한것이 우린 너무 좋았다.
창덕궁앞에 가니 입장할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수 있었다.
창덕궁은 1405년(태종5년)에 경복궁의 별궁으로 지은 궁궐로
1412년에 돈화문을 세움으로써 궁궐의 짜임새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돈화문
돈화문앞에 여러가지 민속놀이를 할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널뛰기도 있었고 팽이, 제기차기....
금천교,
1411년에 축조된 돌다리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돌다리 폭은 임금이 행차할때를 고려해 넓게 만들었다고 한다
진선문
예전엔 진선문 안쪽에 신문고가 있었다고 한다.
인정문
인정전에서 바라본 인정문
인정문 위에는 심문하는 사람이, 아래에는 심문받는 사람이 있던 위치라고 하는데
그때 나는 위에 유담은 아래에 있었다.
전생에 그런사이...오랜만에 내 정원에와 거닐으니 기분이 좋구먼 ~했더니
유담 우스운듯 쳐다본다.ㅎㅎ
인정전
이곳에서는 신하들의 조회,
외국사신의 접견,국가나 왕실의 중요 의식을 행하던 곳이라고 한다.
이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불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한다.
임금이 앉는 어좌
희정당
임금의 처소이며 어전 회의실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대조전
9칸중 양쪽3칸은 왕과 왕비의 침전 이고
침실 주위에는 왕과 왕비의 잠자리를 지키는 상궁들이 쓰는 작은 방들이 있다고 한다.
침실과 회의실을 잇는 복도로 왕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문에는 창살만 있는게 특징이다.
낙선재
1847년 헌종때 후궁 김씨의 처소로 지어진곳으로
마지막 왕비인 순정황후가 1966년까지,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거처하던 곳이라고 한다.
부용지와 부용정
주합루
1776년에 지은 누각으로 인재를 기르고
학문을 연구하며 책을 츨판하던 곳으로
아랫층은 규장각의 서고로 궁중 도서실 구실을 했고
위층은 책을 읽거나 학문을 논하고 ,명상과 사색의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영화당
원래는 임금이 신하들과 더불어 꽃구경하고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기던 곳인데 정조때부터 이곳을 과거시험장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애련정
불노문
궁중에 하나밖에 없는 석문인 불노문은
상감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만든 석문 이라고 한다.
연경당
1812년 순조 28년때 당시 사대부의 집을 모방하여 창덕궁 안에 지은 민가 형식의 건물로
99칸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임금은 궁궐밖 사대부들의 생활을 알기 위해 가끔 이 집에서 생활하였는데 그 때에는
옷차림부터 모든 생활 양식을 사대부의 제도를 따라 하였다고 한다.
담위로 보이는 지붕의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아 보았는데
구중 궁궐 이란 말이 실감 난다.
이렇게 창덕궁을 돌아보고 나니 오후 1시가 조금 넘었다.
청계천으로 갈려고 하는데
걸어가느냐 택시를 타느냐?
유담은 이렇게 한가하게 서울 시내를 걸어보지 못했다고 걷자고 한다.
우린 걸어서 광장시장 먹거리 골목을 찿아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청계천을 돌아 보았는데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낮보다는 밤이 멋있을것 같아
다음엔 밤에 오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 버스를 탓다.
5시간 정도 걸었으니 운동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사진도 찍고....
연휴 마지막 날을 잘 보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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